설악의 시간여행 9 - 설악산 신흥사

1천년 전 절터 지키는 고색창연한 석탑 하나
등록일 2016-06-14 00:00:00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쪽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문의를 받지않습니다 프린트하기
 문화재와 함께하는 설악의 시간여행 9
 
설악산 신흥사
1천년 전 절터 지키는 고색창연한 석탑 하나 

속초지역은 문화재가 귀하다. 국가지정문화재와 강원도문화재를 모두 합해 21점에 불과하다. 이중 보물 3점과 기타 문화재 10점이 모두 신흥사의 유물이니, 신흥사가 속초의 문화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설악산 소공원은 신흥사 부도군과 일주문이 자리잡고 있어 신흥사의 경내 지역이라 할 수 있는데, 소공원의 수려한 풍광과 어울려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손꼽힌다.  

신흥사의 역사는 향성사로부터 시작된다. 향성사는 신라 진덕여왕 6년(652년) 자장율사가 세운 절로, 신라 효소왕 7년(69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3년만에 의상대사가 향성사터에서 5리쯤 올라간 지점인 능인암터에 다시 절을 지어 선정사라 하였다. 선정사도 조선 인조 20년(1642)에 소실되어 2년 후인 인조 22년(1644) 영서, 연옥, 혜원 세 승려가 꿈에 신인(神人)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지금의 자리에 절을 짓고 신흥사(神興寺)라 하였다. 1993년 ‘神’자를 ‘新’자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말 건봉사 말사로 편입된 신흥사는 1971년 조계종 제3교구 본사로 승격되어 현재 20여개 사찰을 거느리고 있다. 
 
동해안 최북단 신라석탑인 향성사지 3층석탑
동해안 최북단 신라석탑인 향성사지 3층석탑 


향성사지 3층석탑 등 보물 3점  

설악산 소공원 조금 못 미쳐 켄싱턴호텔 맞은편 길가에 고색창연한 석탑 하나가 외롭게 서 있다. 이곳이 1천년 전 옛 절터라고 하지만 설악산 진입로 개설 등으로 모두 사라지고 탑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향성사지 3층석탑은 신흥사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재로 1966년 보물 제443호로 지정되었다. 
 
만해 한용운이 1928년에 정리한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에 따르면 향성사는 신라 진덕여왕 6년(652년) 자장율사가 왕명을 받아 창건하였으며, 앞뜰에 구층석탑을 세워 석가세존의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이 기록에 따라 이곳을 향성사 절터로 추정한다. 그러나 석탑의 건립 시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초에 만들어진 기와편이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8세기말에서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석탑은 9층 석탑이 아닌 전형적인 3층 석탑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석탑의 높이는 5.276m이고 사라진 상륜부 높이까지 추산하면 7m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탑은 화려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통일신라시대 탑 양식과는 달리 수수하고 단아한 형태로 제작되어 있다. 향성사지 3층석탑은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신라석탑이다. 
 
향성사지 3층석탑을 제외하고는 사찰의 건물과 문화재 등은 대부분 신흥사 중건 이후에 만들어졌다. 
 
신흥사에 있는 다른 보물급 문화재로는 지난 2011년 9월에 보물 제1721호로 지정된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올해 2월에 보물 제1749호로 지정된 신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이 있다. 연이어 두 불상이 보물로 지정되면서 속초지역에 보물급 문화재가 3개로 늘어났다.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신흥사 본전각인 극락보전 안에 안치되어 있다. 금박을 한 목조불상이다. 중앙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관세음보살상,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상이 자리잡고 있다. 안정된 비례와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표현이 돋보인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머무르면서 영원토록 중생을 교화하는 부처이며,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건물을 뜻하는 이름이다.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은 신흥사 명부전에 봉안된 불상으로, 높이 99cm의 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도명존자 입상(140cm)과 우측에 무독귀왕 입상(156cm)이 자리 잡고 있다. 지장보살좌상은 금박을 한 목조불상이며, 양측의 입상은 채색을 한 목조불상이다. 
 
지장보살은 석가여래가 입멸한 뒤로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육도의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이다. 지옥에 떨어져 헤매는 중생들이 성불하기 전에는 스스로 성불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 보살로 알려져 있다. 명부전은 저승세계인 유명계를 상징하는 건물로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이다. 
 
두 불상 모두 효종 2년(1651) 당대 유명한 조각승 무염이 제작한 불상이다. 조각승 무염의 재능이 흠뻑 담겨 있는 작품이며, 그의 조각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대표작품으로 평가된다. 
신흥사 건물 중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극락보전
신흥사 건물 중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극락보전 
 
수많은 상징과 아름다움 숨은 극락보전
 
신흥사의 목조건물 중 가장 빼어난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건물은 극락보전을 꼽을 수 있다. 강원도유형문화재 14호로 지정되어 있는 신흥사 본전 극락보전은 무심코 지나치면 놓치기 쉬운 수많은 상징과 아름다움이 숨어있다. 극락보전은 조선 인조 25년(1647)에 처음 지어졌으며, 영조 26년(1750)과 순조 21년(1821)에 중수하였다.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 양식 건물로 완만하게 휘어진 지붕의 곡선미와 화려한 단청, 잘 짜여진 공포의 입체감이 돋보인다. 
 
극락보전은 중생이 극락정토를 가기위해 타고 가는 반야용선을 상징하며, 극락보전을 오르는 돌계단은 반야용선의 뱃머리에 해당한다. 그래서 좌우 소맷돌은 반야용선을 끄는 용의 모양이다. 소맷돌 옆면에는 귀면과 삼태극, 구름이 새겨져 있다. 
 
극락보전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려면 문살을 자세히 들여다봐야한다. 극락보전의 꽃살무늬장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불교미술의 백미이다. 
 







 
극락보전의 정면에는 총 10쪽의 문이 있다. 그 중 중앙문은 모두 4쪽으로 되어 있는데, 안쪽 두 문에는 잎으로 육각형을 만들고 그 속에 노랑, 빨강, 파란색의 여섯 꽃을 정교하게 새겨 놓았다. 정면 좌우칸 세짝의 문 중 바깥쪽 한 짝은 네 개의 잎이 하나의 꽃을 피워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나머지 여섯짝 문에는 육각과 원형을 조화시켜 마치 법륜을 상징하는 수레바퀴를 이어놓은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특히 오른쪽 문에는 커다란 연꽃잎 위에 피어난 홍련, 청련, 백련을 비롯하여 수십 송이의 다양한 꽃들이 있다. 그리고 중간 조금 아래쪽 푸른 연꽃잎 위에는 등이 푸르고 배가 흰 물고기가 있고, 같은 줄의 노란 연꽃잎 위에는 거북이 기어가고 있다. 꽃 위로 내려앉는 듯한 파랑새, 호랑나비도 앉아 있다. 
 
육각형과 원형의 문살은 육바라밀 등 불교의 정도를 수행하여 이상향인 극락으로 나아가는 것을 상징화한 것이고, 물고기와 새, 거북, 나비 등을 표현한 것은 이들과 함께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극락보전 외에도 강원도 유형문화재 104호로 지정된 보제루, 강원도 유형문화재 166호로 지정된 명부전 등이 있다. 보제루는 누각식으로 되어 위층은 다락공간, 아래 중앙칸은 극락보전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구성되어 있다. 1층 통로의 높이가 낮아 어른들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극락보전으로 들어갈 때 상체를 숙인 채 겸손한 자세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유생들의 횡포가 심했던 조선시대에 신흥사에도 유생들이 몰려들어 유흥을 즐기기도 했는데, 이때 갓을 쓰고 들어가거나 말이나 가마를 탄 채 들어가지 못하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엄경선(프리랜서 기자) 설악신문 2012.07.30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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