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의 시간여행 13 - 고성 수타사지 5층석탑

망국의 슬픈 이야기 얽힌 석탑
등록일 2016-06-18 00:00:00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쪽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문의를 받지않습니다 프린트하기

문화재와 함께 하는 설악의 시간여행 13

 

망국의 슬픈 이야기 얽힌 고성 수타사지 5층석탑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낡은 석탑, 말없이 세월의 무상함 전해



화려한 단풍의 향연이 끝난 들판은 마냥 쓸쓸하기만 하다. 그 들판에 오래된 석탑만이 홀로 서 있는 풍경은 자못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고성군 간성읍 금수리에 있는 수타사 5층석탑. 석탑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다.

고성산 동북편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는 정보만 확인하고 무작정 찾아 나섰지만 수타사 5층석탑은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혹 이정표라도 있나 찾아보았지만 실패하고 마을 안내 간판에 고성산 등산로 중 가장 오른편 등산로 옆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 무작정 좁은 농로길로 들어섰다. 차 한대 간신히 통행하는 좁은 농로길. 중간에 고성산을 오르는 등산로 입구가 나오고 계속 가다보니 길이 끝나는 지점에 석탑이 보였다. 농가 한 채가 있고, 좀 더 걸어 올라가면 골짜기 옆 들판에 수타사 5층 석탑이 서 있다.

고색창연한 석탑은 문화재 지정과 관련해 아무런 수식이 없다. 다만 금수리 마을 주민들이 석탑에 대한 설명을 적어 놓았을 뿐이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수타사 3층 석탑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4층으로 옥신석 1매와 오개석 4매까지만 남아 있다. 본래 고려시대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석탑은 보존 상태가 그리 양호하지 않아 모서리 부분은 모두 마모되었으며, 심하게 훼손되어 옥개석과 오개석 사이사이에 작은 돌로 괴여 받쳐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수타사지 5층 석탑
수타사지 5층석탑
 



폐위된 공양왕 수타사에 2년간 머물러

이 석탑은 명확한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탓으로 금수리 사지 석탑이라고도 하고, 수타사지 5층석탑이라고 부른다.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휴전선 이남 고성군 지역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석탑이다.

구전에 의하면 고려말 공양왕이 이곳에 유배되어 2년 동안 머물렀고 사찰은 폐허가 된 후 멸실되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세상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이 석탑이 고려의 망국사와 닿아 있다는 건 솔깃한 이야기이다. 공양왕(1345~1394)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후 내세운 창왕을 음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폐위시키고 정몽주 등과 함께 1389년 즉위시킨 고려 마지막 왕이다. 1392년 이성계는 정몽주가 살해된 후 덕이 없고 어리석다는 이유로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였다. 공양왕은 폐위된 뒤 원주로 추방되었다가 다시 간성으로 쫓겨나 간성군 공양군으로 강봉되었다. 2년 후 다시 삼척군 근덕면 궁촌리에 재유배 되어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양왕이 간성에서 2년간 머물던 곳이 바로 수타사라고 전한다. 고성군문화원 발간 자료에 의하면 공양왕의 슬픈 이야기는 공양왕을 직접 모시고 고려조에 충절을 다한 함부열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온다. 조선개국의 혼란기에 형 함부림은 개국공신으로 이후에 영의정까지 지냈지만, 고려말 예부상서와 홍문관 수사를 지낸 함부열은 조선개국 동참을 거부하고 유배중인 공양왕을 은밀히 수행하여 왕이 피살될 때까지 보필하였다고 한다. 공양왕 일행은 2년간 고성군 간성읍 금장동(金章洞) 수타사(壽陀寺)를 근거지로 머물렀다. 그 일행이 삼백여명에 이르렀으나 이성계의 감시와 압력으로 삼척군 근덕면 궁촌리로 쫓겨나 살해치(殺害峙)라는 곳에서 피살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이때 아우 함부열이 형 함부림에 간청하여 공양왕을 간신히 피신시켰으나 이후 함부림은 조정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자객을 간성으로 보내 공양왕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동생 함부열은 숨을 거둔 공양왕을 고성산 서쪽에 묻고 후손들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전한다.
 

수타사가 자리했던 절터는 온데 간데 없고 5층 석탑만 남아 있다.
수타사가 자리했던 절터는 온데 간데 없고 5층 석탑만 남아 있다. 



이제는 밭으로 변해버린 사찰터

고성산 자락 금수리 394번지인 이곳 수타사지는 공양왕이 피신해 와서 머물던 곳이며, 사지 주변에는 3개의 무덤이 있었는데 2기는 수행원으로 왔던 함씨 문중의 것이고, 1기는 공양왕의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곳 수타사는 조선 중엽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빈대가 많이 생겨 벽과 기둥을 덮는 이변에 발생하는 바람에 스님들이 절에 불을 지르고 홍천군 동면으로 이주해 절터만 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홍천군 동면에 있는 수타사가 이곳에서 옮긴 절이라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
망국의 슬픔을 안고 유배 온 공양왕은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폐허가 되어 이제는 밭으로 변해버린 사찰터는 마치 고려 망국의 현장을 보는 듯하다. 석탑은 그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지 않았을까? 긴 세월 비바람에 날선 모서리를 떨구어 내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낡은 석탑은 말없이 세월의 무상함을 전해주고 있다. 
 

엄경선(프리랜서 기자) 2012년 12월 3일자 설악신문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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