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의 시간여행 11 - 고성 왕곡마을

6백년 된 마을 옛 모습 그대로 북방식 가옥 강원도 유일 전통 민속마을
등록일 2016-06-16 00:00:00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쪽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문의를 받지않습니다 프린트하기

문화재와 함께 하는 설악의 시간여행 11
 
 

대문 없이 소통하는 고성 왕곡마을

6백년 된 마을 옛 모습 그대로…북방식 가옥
강원도 유일 전통 민속마을

 

사람들 마음에는 이상향에 대한 동경이 있다. 사는 게 어렵고 세상이 어수선하면 그런 갈망은 더욱 강해진다. 그런 갈망으로 사람들은 전란 때 피난처가 되는 십승지를 꿈꾸고, 후손들에게 좋은 일 많이 생긴다하는 길지(吉地)나 명당(明堂)을 찾게 되는가 보다. 어찌 보면 사람들이 찾는 이상향이 바로 왕곡마을이 아닐까 싶다.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왕곡마을은 지난 1988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통건조물 보존지구 1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지난 2000년 국가 중요민속문화재 제235호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강원도에서 전통 민속마을로 유일하게 보존된 곳은 오직 이곳뿐이다.

마을은 다섯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고, 앞에는 송지호 호수가 펼쳐져 있다. 마을 한가운데 왕곡천이라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옹기종기 기와집 20여 채와 초가집 30여 채가 자리잡고 있다. 자연과 취락이 조화롭게 어울려 풍수지리의 관점에서도 전형적인 명당마을이라는데, 함씨와 최씨가 중심이 되는 전통적인 집성촌으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친척지간이다.
 

 



전쟁과 산불 피해 기적같이 모면

왕곡마을의 시작은 6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말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반대하여 간성으로 낙향한 양근 함씨 함부열의 차손 함영근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런 이유에선지 어머니의 제사는 반드시 차남이 모시는 풍습이 이 마을에 있다고 한다.

마을에는 50년에서 150년이 된 집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6.25 전란 중에도 아무런 피해 없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전란 당시 인근 동해안 일대는 치열한 격전과 함포사격 등으로 적잖은 마을이 불타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6.25때 몇 차례 기관총 사격과 폭탄 투하가 있었으나 마을을 빗겨갔고 마을에 떨어진 폭탄도 다행히 불발탄이었다고 한다.

큰 길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라 초가와 흙집을 걷어내던 1970년대 새마을운동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을은 바닷가에서 10여리도 채 안 떨어져 있지만 다섯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을로 들어오려면 송지호를 둘러오는 토끼길과 공현진에서 들어오는 한고개 길뿐이다. 한고개는 전통마을로 지정된 뒤 고개를 깎고 포장을 해서 차량이 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우마차도 다닐 수 없는 험한 고개였다.

마을은 1996년 고성군 죽왕면 일대를 휩쓸었던 산불도 용케 모면했다. 마을을 둘러싼 산 중 4개가 불탔지만 마을의 피해는 전혀 없었다. 마을의 지세가 물위에 떠 있는 배 형국, 즉 방주형 길지라서 화마에 강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풍수지리에 대한 믿음 때문에 마을에는 우물이 없었다고 전한다. 우물을 파는 행위는 마을 공동체에 화를 가져오는 금기로  여겼다는 것이다. 
 

 

 

 


왜 이 마을에는 대문이 없을까?


몇 차례 고성 왕곡마을을 들렀지만 눈치 채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이 마을의 집들은 모두 대문이 없다는 사실이다. 보통 민속마을에는 행세깨나 했던 집은 높은 솟을대문을, 보통 여염집은 사립문이라도 세워 놓고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왕곡마을에서는 대문 자체를 찾아볼 수가 없다. 집 뒤편과 옆편은 바람을 막는다고 담장을 쌓았지만, 마당 앞 집 입구쪽은 담장도 없고 대문도 없이 탁 트여 있다.

이렇게 대문도 담장도 없어 넓은 마당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다른 민속마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서울 북촌 한옥마을이나 안동의 하회마을도 높은 담장과 대문 때문에 마을길을 걷다보면 시야가 가로막혀 갑갑하다. 그러나 여기 왕곡마을은 그림 같은 자연과 옛 한옥이 평화롭고 아늑하게 어울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특징이다. 

 


ㄱ자형 가옥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왕곡마을 함정균씨 가옥 
 

 

왕곡마을에 대문이 없는 이유가 뭘까? 왕곡마을의 집에 대문이 없는 건 바람과 눈이 많은 영동 지방의 기후 특성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추운 겨울 햇볕을 충분히 받아야 하고 눈이 많이 쌓이면 담장과 대문 때문에 고립되기 때문에 개방적인 형태의 마당 구조를 취했으며, 건물채의 기단도 높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대문이 없다는 것은 이 마을에 수직적인 계급 분화가 미약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높은 대문을 내세워 권위를 드러내는 봉건적 문화가 없고 집성촌이라는 특성으로 개별 세대의 폐쇄성이 적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마을은 기와집과 초가집이라는 외형적 구별 이외에 집의 크기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개방적 구조로 왕곡마을은 자연과 사람이 소통하고,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다. 몇 백년 동안 마을이 평화와 안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외부와 차단된 지리적 조건만이 아니라 대문 없이 소통하는 씨족 공동체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독특한 항아리 굴뚝, 왕곡마을만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ㄱ자형 가옥에 얽힌 삶의 지혜


고성 왕곡마을의 가치는 단순히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전통민속마을이라는 데 있지 않다. 남한에서는 유일하게 북방식 옛 가옥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마을이다. 왕곡마을의 집 구조는 하나의 대들보를 중심으로 앞뒤로 방을 꾸미고 부엌과 식량창고인 도장 등이 모두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는 양통집(겹집) 구조이다. 소를 키우는 외양간까지도 본채 부엌과 붙어 있어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온기가 전체 건물로 퍼지도록 했다.

마을의 집들 중 72%가 ㄱ자형이고, 28%는 ㅡ자형이다. 소를 키우는 외양간 때문에 ㄱ자 형태로 꺾어진 가옥은 겨울이 긴 함경도 지방이나 강원도 북부의 주거형태이다. 건물 내부는 북방식 온돌방을 기본으로 하고 남방주거문화의 영향으로 건물 내부에 1칸의 마루가 포함되어 있다.

앞마당은 대문과 담장 없이 개방되어 있지만, 비교적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뒷마당은 밖에서도 보이지 않아 여인들의 활동을 배려한 사적인 공간이라는 분석이다. 

왕곡마을에서 주목받는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은 굴뚝에 있다. 진흙과 기와를 쌓고 그 위에 항아리를 엎어 놓은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지금도 여전히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떼는 집이 많기 때문이다. 다양한 모양의 항아리 굴뚝은 집집마다 독특한 멋을 보여주고 있는데, 집 외부로 열기가 바로 나가는 것을 막고 초가에 불이 옮겨 붙는 걸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왕곡마을의 모든 전통가옥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함정균씨 가옥은 150년 전에 지은 가옥으로 강원도문화재자료 제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아울러 왕곡마을에는 4대에 걸쳐 병든 부친에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인 효자가 5명이 나왔다는 ‘함씨 4세5효자비’와 극진한 효성으로 호랑이의 호위를 받으며 3년 시묘를 했다는 ‘함희석 효자비’가 있다.

동학 2대 교조인 해월 최시형이 몇달 동안 왕곡마을 김하도의 집에 머물며 포교활동을 하고, 1894년 동학혁명 당시 강릉전투에서 패한 뒤 왕곡마을 함일순의 집에 머물며 전력을 재정비한 것을 기념한 동학기념비가 마을 어귀에 자리 잡고 있다.

왕곡마을은 지금 가을이 한참 익어가고 있다. 산허리를 감싸고 내려오는 오색 단풍과 발갛게 익은 감나무 풍경이 아름답다. 오는 11월 3일과 4일 이틀 동안 왕곡마을 전통민속체험축제가 열린다. 잠시 바삐 돌아가는 일상의 시계를 멈춰놓고, 정지된 시간의 옛 마을로 한번 빠져들어가 보자. 

 

엄경선(프리랜서 기자) 설악신문 2012년 10월 29일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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